성경을 펴면 하나님께서는 땅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신 후,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만드신 기사가 나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가시나무, 백향목, 사과나무, 단감나무, 복숭아나무, 무화과나무, 밤나무, 석류나무 이외에도 사람에게 유익한 수많은 나무가 있습니다. 삭막한 도시 빌딩 숲이라도 나무 한 그루 없는 거리는 없습니다. 숲이나 나무가 많은 전원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그 만큼 여유를 누리는 것도, 우리에게 나무 통해서 들려주시는 전능자의 그림 언어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삭을 죽여야 하는 순간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었던 양도 수풀에 걸려 있었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도 나무에 매달려서 수치를 겪으셨고, 고통스레 피와 물을 모두 쏟으셔야 했습니다. 춥고 배고픈 어부 베드로를 다시 만나러 오신 주님은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위로주시고 배부르게 하실 때 숯불로 불을 피우시고 손수 조반을 준비하셨습니다.
한때 나는 유독 나목(裸木)처럼 그렇게 다 벗어버리고 서 있는 거룩한 모습을 참 부러워했습니다. 배웠던 글 중에서도 오래 기억되는 수필 이양하 선생님의 ‘나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이 없다. (중략)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어디에 있던지 언제나 변함없고 성실하며 가리는 것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남김없이 쓰임 받는 나무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과는 다르게 구별되게 살아갑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의 메마름이 견디기 힘든 것처럼 빛과 소금이어야 할 우리 성도와 교회의 존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힘내세요.